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국 동맹 전쟁 (문단 편집) ==== 로페스의 영웅화/[[미화]] ==== 로페스 대통령은 파라과이 민족주의, 침략자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저항정신, 애국심의 상징으로 현재도 파라과이에서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파라과이 과라니]] 지폐에 아버지 로페스의 초상과 로페스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아순시온 전쟁 박물관 입구에는 "국가와 함께 죽으리라"라는 말이 크게 새겨져 있다. 박물관 안에는 로페스 대통령과 린치 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박물관 한복판에 있다. 또 로페스가 전사한 3월 1일은 파라과이 독립기념일 다음으로 중요한 국경일로 '''"국가 영웅절"'''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전쟁 박물관에는 아코스타 뉴 전투에서 전사한 "무명소년영웅의 묘"도 있다.] 영부인 엘리사 린치도 파라과이에서는 파라과이의 여왕, 여걸, 국모로 추앙받는다. 사실 파라과이 전쟁이 종식된 후에는 로페스는 그야말로 국민을 전쟁에 몰아넣고 위대한 파라과이를 한순간에 3류 국가로 전락 시킨 미치광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는 내정간섭을 당한 탓도 있었지만 패배의식이 국가 전체에 팽배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헌법을 도입하고 친아르헨티나 인사들로 파라과이 정부 인사들이 꾸려지면서 교과서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삽입되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볼리비아]]와 3년간 치렀던 차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그런데 사실 이 전쟁도 그리 시원찮은 전쟁이었다. 확실히 파라과이가 목표했던 바를 상당수 이룬 전쟁이라 파라과이가 승리한 건 맞는데 쌍방간 전사자가 10만 명에 달해 전인구의 3~4%가 날아갔고 경제도 아작나서 어떤 면에서는 피로스의 승리와도 같았다.(그래도 파라과이 입장에서는 선전한 편이기는 한데 전쟁이 터질 당시 삼국 동맹 전쟁의 상흔을 다 회복하지 못한 파라과이가 이기리라 본 나라가 없었다.) 요컨대 뒤에 나올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같은 얘기는 전혀 들어맞지도 않을 일이다. 당장에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약체 수준의 나라인데 그런 나라와도 엇비슷한 타격을 주며 이겼는데 우루과이는 그렇다고 쳐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동시에 상대한 전쟁이 운 나빠서 질 리가 없다. 물론 현실에서도 [[6일 전쟁]]처럼 3국을 상대로 선빵을 갈겨 이긴 전쟁이 있긴 하지만 이름 그대로 6일만에 끝난 전쟁이며 이스라엘은 전쟁 전부터 이길 수 있기 위해 온갖 묘안을 다 짜내고 지른 전쟁이며 아랍쪽은 살짝 방심했다가 얻어맞았다. 결국 이 전쟁 이후의 파라과이가 내놓은 주장은 그저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급변했는데 당시 차코 전쟁에 참가했던 전쟁 영웅인 라파엘 프랑코(Rafael Franco)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로페스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 파라과이의 자주성을 드높인 위대한 지도자다."라는 주장을 펼치면서였다. 이런 기조는 역시 차코 전쟁에 참가했던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어나갔고 그의 재임 35년 간(1954~1989) 파라과이는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분위기로 흘러나갔다. 여기서 로페스는 파라과이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인물로 선전되었고 그 결과 현재 파라과이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등극한 것이다. 반대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자신의 욕심으로 나라를 파멸까지 끌고간 미치광이 독재자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제3자가 해당 전쟁의 시작과 끝을 보았다면 이쪽 의견에 동의할 확률이 높다. 앞서 보았듯 3국 동맹 전쟁에서 파라과이를 쥐어팬 [[브라질 제국|국]][[아르헨티나|가]][[우루과이|들]]은 결코 파라과이에게 '''먼저 선빵을 걸지 않았다.'''[* 전쟁의 배경이 된 것에는 브라질의 우루과이에 대한 내정간섭이 있긴 했지만 브라질이 특별히 파라과이 엿먹으라고 지원한 게 아닌 이상 브라질은 전쟁이 일어난 것에 대한 책임은 없다.] 국가를 강하게 만들겠다는 야심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애초에 체급차이는 생각도 않고 무턱대고 브라질에게 선전포고한 것도 모자라 영토 열어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아르헨티나에게도 전쟁 거는 바보 짓을 저질렀다.''' 헌데 중요한 사실은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사이는 안 좋다는 것이다.]]''' 3국 동맹 전쟁에서 3국의 일원인 우루과이의 독립과정을 보면 두 나라의 사이가 나쁠 만한 이유는 충분한데[* 그리고 이때는 무려 30여 년 전이었다! 최소 30년 전부터 두 나라 사이는 좋지 않았던 것으로 거기다 하필 두 나라가 남미에서 제일 강한 나라들이라 사이가 좋아질 기미도 없다.] 브라질과 적이 된 것까지는 이해가 되어도 아르헨티나까지 파라과이가 아니라 브라질과 손잡게 된 것은 파라과이가, 그리고 그 파라과이를 이끈 로페스가 얼마나 판단력을 잘못 내린 것인지 짐작해준다. 게다가 항복 요구도 거절했는데 물론 항복해 봐야 파라과이는 어차피 철저히 난도질당할 운명이었지만 '''저 [[항복]] 한 번에 파라과이 국민들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차라리 항복하랄 때 했다면 아무리 브라질이라 해도 일단 파라과이를 족치는 데는 성공하니까 파라과이 국민 수십만 명을 굳이 갈아죽일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즉 아무리 로페스를 띄워줘도 일단 안해도 될 전쟁을 해버린 데다 그 전쟁에서 자국 역량은 생각도 않고 주변국 거의 전원에게 선빵을 갈겨대서 패배한 데다 마지막에는 패한 국가를 위해 국민의 목숨을 대량으로 희생시켰기 때문에[* 물론 굳이 말하자면 이는 결과론이다. 허나 적어도 그가 보인 모습에서 국민의 목숨을 생각하는 모습이 전혀 없는 건 사실이다. 언행을 보면 알겠지만 국민이야 얼마나 죽든 말든 국가가 망할 때까지 싸우라는 게 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영웅이라고 평가하기에는 결격사유가 너무 많다. 차라리 침략'''당'''해서 저런다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침략전쟁을 '''먼저 일으켰으니''' 할 말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